2010년 02월 01일
Twin Peaks: Fire Walk with Me

<트윈픽스> TV시리즈를 시즌 2 중반까지만 보고 (정확히 말하자면 7번째 에피소드에서 정체된 상태) 그만둔지 1년째, 큰 맘 먹고 시즌2를 끝까지 본 뒤에 보기로 했던 영화판('극장판'은 TV시리즈의 내용을 그대로 압축한 경우에 쓰는 것이 적당하므로 이 글에서는 쓰지 않기로 한다.)을 이제야 봤다. 보고서 든 생각은... 정말 아쉽다는 것.
일단 전반부는 린치답게 흥미롭다. 전혀 말도 안 되는 요소가 여럿 섞여서 하나의 태피스트리를 형성하는 쾌감은 원작 TV시리즈에서도 여러번 느낀 적이 있었으므로 언급하지 않기로 하고, TV에서는 하지 못한 것들을 마음껏 하는 모습이 좋았다. 과도할 정도의 노출과 폭력 장면, 뜬금없이 적절한 쇼크 효과는 린치 월드의 인장 아닌가??? 그리고 제작비와 로케이션 문제로 다루지 못한 공간과 앵글(예를 들자면 낮의 '로드하우스' 술집의 모습이라던지, TV 매체에서는 잡지 못하는 와이드샷 등)을 집중적으로 파고 드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 2/3 지점에 들어가면서 길을 잃기 시작한다.
살해되어 "비닐로 포장된(wrapped in plastic)" 로라 팔머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고, 영화의 상영 시간은 한참 남아있다. 초반 30분에서 전혀 다른 사건과 로라 팔머의 살해에 관계가 있다는 암시를 준 것은 신선했지만, 그 이야기로 영화는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니, (스포일러)"'밥'에 잡아먹히고 있는 아버지 리랜드와 1년 전에 살해당한 아가씨 사이에 관계가 있었다 카더라"(스포일러 끝)을 핑계로 삼아 얼룽뚱땅 연계시켜 버리고 영화는 지지부진하면서도 데이빗 린치의 장기도 아닌 성격 묘사 영화로 넘어간다. "로라 팔머의 몰락을 보여주겠다"고 자신있게 얘기하는 영화는 실제 광팬들은 이미 뻔히 알고, 일반 관객은 전혀 모를 이야기만 읊으며 끝난다. 아니 ㅅㅂ 리랜드 팔머가 밥한테 잡아먹혔다는 거는 시즌 2 초중반이면 안단 말야!
그런데 문제는 데이빗 린치는 절대 캐릭터 묘사에 강한 감독은 아니라는 것이다. 본 영화를 작업하기 전까지 그나마 정통 드라마에 가까운 <엘리펀트 맨>은 데이빗 린치가 자기 목소리를 완전히 내기 전에 만들어진 영화이고, 그 이후에 작업한 영화들은 모두 멀쩡한 외관 속에 있는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뭐 따지고 보면 <듄>도 그런 것 아니겠는가? 노골적인 스페이스 오페라인데!!!) 그나마 TV 매체의 특성 덕분에 노골적인 소프 오페라와 린치식 초현실주의가 기묘하게 균형을 맞춘 <트윈 픽스>였지만... 영화는 이미 갈 길을 잃었다. 극중 인물에 대해서 착취적인 데이빗 린치 덕분에 배우들은 준포르노를 찍고, 머리에 총을 맞은 시체는 뇌수를 내뿜는다. 인물은 절규하지만, 어차피 끝이 정해져 있는 이야기에 질질 끌려가며 새로운 면모를 전혀 보여주질 못한다.
하지만 영화는 마지막 10분에 그나마 갈피를 잡는다. 빨간 방에 들어가고 웃는지 우는지 기묘한 표정을 짓는 로라 팔머를 보면서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느꼈던 기묘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망자를 구원하지는 못하지만 위로하는 천사, 암흑 대신 순백으로 사라져 가는 주인공...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엔딩과 그대로이다.
어쩌면 이 영화를 지금 평가하자면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전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폭력 없는 할아버지 이야기 <스트레이트 스토리>를 만들면서 극중 인물에 가까이 다가서는 법을 체득한 린치는 그들을 동정하게 되었고, 기괴한 이야기 속에서도 슬픈 감정을 끌어내는 법을 익히게 되었다. 그 다음 영화 <인랜드 엠파이어>에서도 린치는 플롯을 무시하고 마구 질주하지만, 마지막에는 주인공에게 안식을 안겨주는 친절한 할아버지가 되었다. 결론은... 난 지금의 린치를 정말 사랑한다는 것이다.
* P.S: 줄리 크루즈의 노래는 영화판에서도 너무나 좋다. 이 아가씨의 노래를 듣는 순간이면 모든 것을 잊고 저 동네에 살고 싶어진다.
# by | 2010/02/01 00:26 | 본 영화 | 트랙백 | 덧글(0)



